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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경

2014.04.02

관상기도가 아닌 것/ 관상기도의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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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상기도가 아닌 것



1) 관상은 긴장 해소 훈련이 아니다.

관상을 통해 긴장이 해소되기는 하지만 부수적인 효과이다.
관상은 일차적으로 관계성이므로 지향성을 갖는다.


관상은 하나의 기술이 아니고 기도다. "기도합시다."라고

말할 때는 "하나님 관계 안으로 들어갑시다." 혹은 "

우리가 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합시다."라는 뜻이다.


향심기도는 발전하고 있는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순수한 믿음의 수준으로 옮겨 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2) 관상기도는 은사가 아니다.


관상기도는 믿음, 소망, 사랑의 성장을 깊게 해 주며

영혼의 실체와 그 기능들의 정화, 치유, 성화를 도와 준다.



은사는 영적 여정에 진보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

은사들이 그 사람의 성덕이나 기도 단계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은사들은 관상기도와 같지 않으므로 그 은사를 가진 사람을

자동적으로 거룩하게 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 은사에 집착하게 되면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된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곧고 좁은 관상 기도가

성덕에 이르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길이다.

관상기도는 믿음, 소망, 사랑의 성장의 열매이며

그 성장을 지속시켜 주는 것이다.



3) 관상기도는 초감각 심리현상이 아니다.


어떤 현상이 생기기 전에 그 현상을 미리 알게 된다든지,

멀리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안다든지 심장 박동이나 호흡과

같은 신체 과정을 조종한다든지, 육체 이탈 경험이나 몸이

떠오른다든지 기다 다른 초감각 심리 현상과 같은 의사 심리 현상이 아니다.

의식의 심령 수준은 정신적 자아 단계 보다 한 수준 위에 있고

이정신 자아 단계는 현재 인간 발달의 일반적인 수준이다.

심령선물을 과대평가하거나 성덕이 초 심리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떠오름이나 음성을 듣거나 여러가지 환시의 선물을 가지게 되면

겸손해지기 어렵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가능한 한 이러한 선물을 피하도록 권하고 있다.

비상한 심리적 혹은 심령의 힘은 성덕이나 하나님과의

관계의 성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큰 영성 발전의 표지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4) 관상은 신비 현상이 아니다.


신비적 현상이라 하면 신체 탈혼, 외적 혹은 내적 환시,

외적 말씀, 상상으로 주시는 음성이나 사람의 영안에 새겨

주시는 말씀등과 같이 그 사람에게 특별히 은총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일을 말한다.

'가르멜의 산길'에서 십자가의 성요한은 극단적으로

외적(가시적) 인 것에서부터 극단적으로 내적인 것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영적 현상을 거부하도록

제자들에게 훈계한다.

그에 따르면 순수한 믿음만이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가장 지름길이다.

외적 음성이나 환상은 잘못 이해될 수 있다. 사려깊은 분별을

가지지 않고 이것을 따르면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어느 특정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에 대하여는 보장이 없다.

그 메시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상상, 선입견, 정서 체계에 의해 왜곡될 것이 거의 확실하며

상상이나 선입견이나 정서 체계는 그 메시지를 수정하거나

상당히 바꾸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메시지를 받는 사람의 자구적 해석에 얽매이시지 않는다.

환시나 음성이나 유추의 과정보다는 기도 중에 성령이 암시하는

내적 인상이 더 신뢰성이 높으며 이 암시는 부드러우면서도

끊임없이 마음에 끌리는 그러한 것이다.

관상기도의 체험을 관상기도 그 자체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십자가의 요한에 따르면 순순한 믿음이란 그 영혼에게 하나의

어둠의 빛줄기이다. 그것을 감지할 인간의 기능이 없다.

그것은 그것을 감지할 인간 기능들을 넘어선 깊은 곳에서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다만 자신의 삶 안에 맺어진 열매를

보고 그 현존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그 빛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분의 어둠의 빛을 비춰 주시는 것이다.

관상기도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신비체험을 하는 사람은 5%도 안된다.

일반적으로 감각의 어두운 밤이나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한다.

그들에게 위안은 잘 찾아오지 않고 또한 멀리 있는 것 같다.

관상기도를 하지 않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영적으로 생존하기

위하여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관상기도의 기본은 무엇인가?

순수한 믿음의 길이다. 그외 아무것도 없다.




2. 관상기도의 차원


관상기도는 하나님이 그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이다.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감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것은 무한으로 여는 것으로 무한한 가능성으로 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성장은 하나님께서 초월 가능성과 함께

우리에게 주신 우리 자신의 기본적인 선, 즉 존재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다.

이 존재라는 선물은 우리의 참자아인 것이다.

믿음으로 하는 우리의 동의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내 안에

태어나시고 그리스도와 우리의 참 자아는 하나가 된다.


우리가 내 안에 계시는 현존과 성령의 활동을 자각하는 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진정한 기도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심과 그 분이

중단없이 계속적으로 우리를 고무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는 데에 바탕을 둔다. 이런 뜻에서 보면

모든 기도는 성령 안에서의 기도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우리 자신의 성찰에 따른 중재나

우리 의지의 행위없이 성령의 영감이 우리의 영에 직접 주어지는 기도를 뜻한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고 우리는 그 기도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 대한 전통적인 용어가 관상(contemplation)이다.



우리는 관상 기도를 관상 생활과 구별해야 한다.

관상기도는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상태로 이끌어주는

일련의 경험이다. 관상생활은 하나님과 일치를 이룬

그 상태 자체를 말하며 이때에는 기도와 행동이 성령에 의해 움직여진다.


기도의 뿌리는 내적 침묵이다.


사람들은 기도를 생각과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도 형태의 하나이다.

에바그리우스에 의하면 "기도란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말은 기도 속에 생각들이 끼여 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관상 기도는 사고의 공백이기 보다는 사고로부터 이탈이다.

절대신비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언어와 사고와 정서를

즉 우리의 전 존재를 열어 드리는 것이다.

이 때에 우리 의식 속에 있는 것을 거부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식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단순히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노력함으로써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서 그 너머로 가는 것이다.

"기도는 마음과 가슴을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것이다."

모든 기도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가슴을 들어

올리는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성찰이란 기도의 중요한 전제 요소이지만 기도 자체는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내적 행위를 바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봉헌하는 것이다.

관상기도의 수련은 성령께서 인도하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에 우리가 참여한다 함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말하는 자기 부정이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마가8:34) 고 말씀하신다.

자기 자신의 부정은 우리가 자신의 지력과 의지와 기능에

의존하는 습관으로부터의 결별도 뜻한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 중에 일어나는 평범한 생각은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께로 가는 데에 필수라고 여겼던 깊은 성찰과

영감조차도 떨쳐 버릴 것을 요구한다.

관상기도는 전략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격 관계를

통하여 형성되는 역동적 과정의 일부이다.


관상기도의 첫번째 효과는 무의식 속에 있는 에너지의 방출이다.

이 과정은 두 가지 다른 심리 상태를 유발한다.

그 하나는 영적 위안, 성령 은사, 심령 능력에서 오는 개인의 발전 체험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알게 되면서 자아인식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부터 오는 인간의 약함의 경험이다.

자아인식은 자신의 인격의 어두운 면을 의식하게 되는 것을 뜻하는 전통적 용어이다.



이 두가지 무의식 에너지를 방출할 때에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오랜 신앙 습관이 있어야 안정하게 보호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영적 위안이나 피폐한 자신을 깨달아 처참함을

느끼게 되면 용기를 잃어버리거나 절망으로 빠져 들기도 한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계발해 가는 것은

자기 현양이나 자기 비하와 같은 정서적 생각에 부딪칠 때에

자신의 정신을 안정시켜 주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방법이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자신의 영적 수련을 오로지 하나님께

바치도록 함으로써 발전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는 동정심으로 움직인 가슴이 밖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 자신이 자신만의 영적 여정과

그 현상에만 집착하게 되는 우리의 뿌리깊은 경향을 중화시켜 준다.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는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며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시작하여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한 동정심을 실천함으로써 발전된다

다른 모든 이를 조건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다른 이를 위하여 봉사하는 습관은

우리가 정서적 혼란에 빠질 때, 우리의 정신이 그 홍수 속에서

빠지지 않으면서 무의식의 에너지를 방출하도록 도와주는 두 가지 둑이다.

이러한 에너지가 헌신과 봉사라는 두 둑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흐를 때

그 에너지는 영적 지각, 이해, 비이기적 사랑의 수준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 줄 것이다.



습관적 생각과 욕망의 속박에서부터 독립할수록

우리는 더욱 고요한 마음으로 관상 기도에 들어 갈 수 있다.

이탈은 자기 부정의 목표이다.

이것은 모든 현실에 대하여 무소유의 태도이다.

거짓 자아 체재의 뿌리를 꺽어주는 속성이다.



거짓 자아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착각으로서 뇌나 신경 조직 속에

저장되어 있는 습관적 행동 형태와 정서적 습관들이 쌓인 것이다.

인생의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어떤 상황에 부딪칠 때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거짓 자아는 자기의 반응이 신앙적 동기를 가진 것처럼 교묘히 위장한다.

진정한 신앙적 태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거짓 자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관상기도로 성령은 자아 중심적 성향의 뿌리를 치유해 주며

우리의 의식 활동의 원천이 된다.

예수의 신성이 관상의 원천이다. 거룩하신 분의 현존이

감싸 주시는 경험을 할 때 우리는 내면으로 관상하도록 이끌린다.



성령은 성서와 우리 일상생활의 사건을 통해 우리 양심에 말씀하신다.

성령은 우리의 참 자아인 내면의 깊은 원천에서 우리의 양심에 말씀하신다.

이것을 적절히 말하자면 관상이다.




'토마스 키딩,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예향원(www.yehyangw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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